파주교회 소식


[높은뜻 브랜드에 대한 생각] 오대식 목사

교회
작성자
pajuchurch
작성일
2019-02-15 11:21
조회
237
<높은뜻 브랜드에 대한 생각>

지난주일 높은뜻 파주교회 개척감사예배를 드렸다. 대부분 기쁜 마음으로 하나남께 감사를 드렸지만, 모든 사람이 다 고운 시선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높은뜻 정의교회로부터 높은뜻 덕소교회가 분립을 할 때도 그렇고, 이번에 덕소에서 파주교회를 개척할 때도 그렇고, 언제나 분립이나 개척을 할 때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높은뜻 브랜드에 관한 얘기다.

소위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목사님들이다. 그분들은 높은뜻 교회의 목사들이 높은뜻 이름 덕으로 목회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높은뜻 이름을 떼면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그나마 높은뜻 이름을 내세워 목회를 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높은뜻 간판을 내걸면 어느 정도 교인들이 모이니까.

그러나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다른 목사님들은 잘 모르겠지만 높은뜻 간판을 걸고 목회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매력적이지 않다.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보장 받은 70세 정년을 포기하고 65세에 은퇴를 해야 하고, 은퇴할 때는 법이 정한 퇴직금만 받게 된다. 집은 물론이고 위로금이나 전별금은 전혀 없다. 6년에 한 번씩 재신임 투표를 받아야 되고, 통과가 되지 않으면 (교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덕소교회는 2/3 찬성을 받아야 한다) 위임목사여도 다른 사역지를 찾아야 한다. 65세까지 살얼음판을 걸으며 조심조심 목회를 해야 한다는 의미고, 그러고 나서 은퇴를 해도 교회로부터 얻는 것은 전혀 없다. 내가 적립한 만큼의 퇴직금을 받고 교회를 떠나야 한다.

아주 어려운 개척교회는 그렇지 않지만, 웬만한 200~300명 이상의 교회만 되어도 한국교회들은 담임목사님이 70세에 은퇴할 때 적잖은 예우를 해준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교회가 빚을 지기도 하는 등 어려움도 겪지만, 목사가 은퇴할 때 어느 정도 예우를 해드리는 것이 한국교회의 문화로 자리 잡은 지가 오래다. 그래서 간혹 목사님들이 은퇴할 때 교회로부터 제대로(다른 교회만큼) 예우를 받지 못하면 섭섭하다고 생각하거나 평생 자신이 목회를 헛했다고 분노하는 분들도 계신다. 가끔 이런 생황에서 교회가 큰 내홍을 겪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원만한 가운데 은퇴를 한다. 대체로 납득이 갈만한 예우를 교회들이 나름대로 성의껏 해준다는 뜻이다.

나는 솔직히 그 예우를 받고 싶다. 우리 교회가 아주 작은 개척교회도 아니고, 정의교회 때는 3,000명, 지금 덕소교회도 1,300명이 된다. 그러면 은퇴 시 어느 정도는 예우를 받을 수 있다. 다른 교회라면 말이다. 나는 높은뜻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 때문에 내가 기본적으로 받고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바꾸고 싶지 않다. 높은뜻 이름만 떼면 나도 70세까지 목회를 할 수 있고, 원로목사도 될 수 있다 (2009년부터 높은뜻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했으니). 그리고 죽을 때까지 총회 법이 정해 놓은 생활비를 교회로부터 받을 수 있다.

사실 덕소로 분립해서 나올 때 높은뜻 이름을 떼자는 얘기가 일부 교인들 가운데 나왔었다. 그런데 그 때 나는 그런 논의가 그렇게 싫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게 손해가 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당시 어느 교인은 높은뜻 이름만 떼면 70세까지 목회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해달라고 내게 조르기도 하였다. 결국 투표를 거쳐 높은뜻 이름을 계속 사용하자고 결정을 했을 때, 그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내 안에서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나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렇게 예우를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아주 많다.

세상에 모든 이름이 다 유명브랜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이름이 그 브랜드의 힘을 갖기 까지는 그 이미지가 형성되기 까지 많은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따라야 한다. 목사들이 누릴 수 있는 많은 권리들을 내려놓고, 장로, 권사, 안수집사들이 누릴 수 있는 엄청나게 많은 힘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오늘의 높은뜻 브랜드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높은뜻 브랜드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더 많이 희생하고 지금보다 더 많이 포기해야 진정한 높은뜻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높은뜻 브랜드 덕을 보며 목회를 한다고? 높은뜻 간판을 걸면 교회가 다 잘 된다고? 간판을 떼고 목회를 해야 정당한 경쟁이라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저것 다 권리 포기해야만 할 수 있는 목회, 살얼음을 걷듯 매 순간 긴장해야 하는 목회, 죽어라 목회를 해도 은퇴 후에 아무 대책이 없는 목회라는 것을 알면 선뜻 높은뜻 이름의 덕을 본다고 얘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높은뜻 이름은 목사나 교인이나 희생을 각오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목사나 기존 교인들이 다 그런 희생의 길을 걷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지금도 생각에 변함이 없다. 내가 높은뜻 이름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 높은뜻 이름이 내 덕을 보는 것이라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모든 높은뜻 교회의 목사님들이 높은뜻 이름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 높은뜻 이름이 그 목사님들의 덕을 보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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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오후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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